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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반무예 전승자 정영근 사범

기사승인 2018.08.21  13: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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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대첩 속 빛났을 우리 무예를 전승한다

“얍!”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창이 허공을 가른다. 하늘을 나는 듯 빠르게 방향을 바꾸며 창을 휘두른다. 한산대첩 축제의 단골손님, 24반무예 시범의 한 장면이다.

24반무예 경당협회의 정영근 중앙시범단장은 25년째 우리나라 전통무예인 24반무예를 전파하는 무예 전승자다.

“24반무예는 정조대왕이 정리한 ‘무예도보통지’에 나와 있는 우리 정통무예입니다.”

이 책은 정조대왕이 서거하기 4년쯤 전에 완성됐다.

전쟁에 대한 대비 없이 임진왜란을 치른 조선은 전란 후 전통무예 6가지를 정리해 ‘무예제보’라는 책을 펴냈다. 이후 사도세자가 12가지 무예를 더해 ‘무예신보’를 펴냈다. 그리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던 정조대왕이 말을 타고 하는 마상무예와 다른 무예를 추가하여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었다.

“이 무예도보통지는 왜와 명나라와 조선이 전장에서 무예 대결을 벌이면서 체득한 3국 무예의 핵심이 녹아 있는 대백과사전입니다. 정조대왕은 일반 서민들도 책을 보고 무예를 배울 수 있도록 한글본을 만들고, 그림까지 자세하게 그려넣도록 했지요.”

정영근 사범은 24반 무예를 펼칠 때마다 정조대왕의 큰마음을 생각한다. 신분제가 엄격하던 그 시절에 평민도 익힐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만민 사랑과 평등의 마음을 생각한다.

잃어버릴 뻔했던 전통무예

24반 무예는 조선의 군대에서는 필수적으로 전수되는 기본 과목과 같았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 야욕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자연히 무예의 맥도 끊기고 말았다.

이 무예를 되살려낸 이가 바로 ‘24반무예경당협회’ 임동규 총재다. 임동규 총재는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비영리법인 ‘24반무예경당협회’를 설립하여 24반무예를 복원 및 보급하고 무과시험과 마상무예훈련 등을 재현하고 있다.

임동규 총재가 본격적으로 24반무예를 되살린 건 감옥 안에서였다. 박정희 정권시절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던 임동규 총재는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유도를 즐기던 청년 임동규는 감옥 안에서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전통무예를 익혔다. 죽을 때까지 감옥살이를 해야 할 처지에 놓인 청년 무기징역수가 빗자루를 들고 하루하루 도 닦듯이 우리 무예를 익힌 것이다.

그런데 기적같이, 국내 정세가 변하고 88올림픽을 치르게 되면서 임동규 총재는 1988년에 가석방됐다. 그리고 그와 함께 80여 년 동안 망각의 감옥에 갇혀 있던 24반무예도 세상으로 나왔다. 임동규 총재가 제자들을 모으고 한창 무예를 보급하던 1992년, 정영근 사범은 신문광고를 보고 임총재가 있는 전라도 광주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24반무예를 배웠다.

우리 체질에 맞는 전통무예

“전통무예는 배울수록 매력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예술적이고 우리 체질에 잘 맞아 국민 생활체육으로 보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누리기에 진짜 아깝습니다.”

정영근 사범의 전통무예 사랑은 끝이 없다. 그러기에 사범 자격증을 딴 1993년부터 25년 동안 생활을 책임져 주지 않는데도 전통무예 보급의 한 길을 걸었던 것이리라.

“전통무예는 체육관을 통해 보급하기 어려운 종목입니다. 무기가 길어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몇 명 가르칠 수도 없지요.”

전통무예만으로 체육관을 운영할 수 없으니, 돈벌이를 하는 직업도 될 수 없다. 그래서 정영근 사범은 합기도 등 다른 종목을 하는 체육관의 사범들을 지도한다. 본인의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전통무예를 겸해 가르치도록 한 것이다. 현재 통영에는 15명의 전승자가 24반무예를 익히고 있다.

통영과 24반무예

삼도수군통제영은 조선 수군의 본영이었다. 세병관 앞마당은 삼도의 수군이 갈고닦은 무예를 선보이며 겨루는 장소였다. 그러니 전통무예는 통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57년의 전통이 있는 한산대첩 축제에도 24반전통무예 시범은 필수 재현 종목이다. 하지만 정영근 사범이 통영에 내려오기 전에는 외지에서 전통무예 시범단을 모셔와야만 했다. 정 사범만 해도 진주에서 무예보급을 하고 있었다.

정 사범이 2013년 고향으로 돌아온 뒤부터 통영시는 24반무예를 재현하기 위해 타도시에서 시범자들을 모셔오지 않아도 된다.

“한산대첩 축제 시범은 사실 무더위와의 싸움입니다. 전승일을 기억하느라 여름에 축제를 여니, 불편한 옷을 입고 뙤약볕 아래서 시범을 보이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요.”

정영근 사범의 기합 소리에 맞춰 무예 전승자들은 한산대첩 속에 빛났을 우리 무예를 재현한다.

서울, 수원, 그리고 통영

24반무예를 상설 시범하는 곳은 서울 남산타워와 수원 화성 두 곳이다. 서울이야 궁궐 수비를 위해 가장 뛰어난 무사들이 있던 곳이고, 수원은 정조의 화성 행궁과 관련해 정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4반무예를 한다.

그리고 통영에서는 한산대첩축제 기간을 포함하여 1년 중 8일 시범을 보인다.

“통영은 조선의 유일한 군사계획도시입니다. 바로 저 세병관 앞마당이 수군의 무예를 펼쳐 보이던 유서 깊은 곳이지 않습니까? 통영이야말로 24반무예를 상설 시범해야 하는 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사범은 시범을 넘어 체험까지 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를 바란다. 사람들의 입에서 “통영 가면 통제영 군사들이 무예를 가르치더라. 역시 통영은 애국의 충절의 고향이더라.”라는 말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민에게도 무예를 가르치고자 했던 정조대왕의 마음을 모두와 나누고 싶습니다.”

이 마음으로 오늘도 정영근 사범은 무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24반무예를 알리고 있다.

김선정 기자 64440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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