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시민들의 민주주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이 명명백백하지만, 여전히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떼법’이 통할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제보를 받고 본지가 취재에 나선 곳은 북신동 재개발 해모로아파트였다. 제보자는 본지에 각 세대마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에 대해 재논의 촉구를 위한 입주민 동의서’라는 문서가 배포돼 있는데, 그 동의서에서 6가지 사안에 대해 ‘재논의’ 또는 ‘재선정’하거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며 진상을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동의서 하단에 6가지 관련사안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가입하라고 권유하고 있어, 동의서를 작성해서 배포한 것은 인터넷 포털싸이트의 모 카페인 것으로 추정된다.

입대의 잘못? 입주민 헐리웃 액션?

여섯 가지 관련사안은 ①엘리베이터 광고판 제거 또는 대안 논의 ②입주민의 부담을 줄이고 현실성을 고려한 장기수선충당금 재논의 ③세대하자처리 미흡과 지연부분에 대한 논의 ④공용하자 부분 해결을 위한 시급한 논의 ⑤주차비 인하에 관한 재논의 ⑥위탁관리업체 선정과정에서 일어난 부당성에 대해 입주민에게 사과요구와 업체 재선정 논의다. 만일 위 사안들의 결정과정에서 절차상 위법이 있다거나, 불공정한 거래가 있었다면 입주민으로서는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만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해모로관리사무소의 해명은 동의서 배포한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입대의에서 의결된 ①사안은 지난 5월29일 입찰에 부쳐 6월17일 낙찰된 뒤 정상적으로 회계 처리된 사안이라고 한다. 공동주택 엘리베이터에 광고를 게재하는 것은 어느 아파트에나 있는 일이다. 주민 일부가 개인적으로 광고판이 보기 싫다고 주장한다고 바꿀 수는 없으며, 입주민 대표자들이 결의해서 시행하는 사안인 만큼 역시 입주자 대표들이 재차 결의해야 변경할 수 있는 것이다.

하자보수 하는데도 굳이 재논의 하자?

다른 아파트보다 장기수선충당금이 많으니 결국 세대부담을 줄이자는 ②사안에 대해서도 관리사무소는 다른 아파트보다 특별히 많지도 않을뿐더러, 입대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한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해모로아파트의 장기충당금은 16평 9900원~42평 2만6800원으로 ㎡당 171원인데, 죽림지역 아파트도 150원~156원/㎡, 푸르지오는 260원/㎡라고 한다. 무엇보다 지금 부담을 줄여서 미래의 부담을 늘리는 것도 온당치 않아 보인다.

③과 ④의 경우 해모로아파트 입주 때부터 지적됐던 사안으로 현재도 5명의 시공사 직원이 하자보수를 하고 있고, 공용하자에 대해서는 지난 8월 28일 하자보수보증서와 장기수선계획과 함께 47억 원의 이행보증금을 수령해서 8월 30일 입대의에 보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동대표면서 입대의와 다른 입장?

⑤사안인 주차비의 경우 1대는 무료, 2대는 1만원, 3대는 3만원, 4대는 10만원, 5대 15만원으로 하기로 9월 24일 입대의에서 결의했다고 한다. 1023세대 대규모 입주민들의 공평한 주차장 이용을 위한 조치였고, 심지어 대표자 회의 당시 “3대는 10만원을 받고, 4대부터는 주차를 금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율배반적이게도 이 주장을 한 동대표 M씨는 지금은 ‘동의서를 배포한 측’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관리사무소 측 설명이다.

내부총질, 입대의 흠집내기용?

⑥사안은 입대의가 실수한 측면이 있고 이로 인해 시청으로부터 ‘엄중경고’를 받았다고 관리사무소는 설명했다. 하지만 동의배포측이 말하듯 ‘선정과정의 부당성’은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위탁관리업체 선정심사에서 업체의 응찰가에 대해 1원 미만을 ‘항목별로 무효하고 합산’해야 할 것을, ‘합산 한 다음 무효’하는 바람에 ‘4원’정도의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이 정도 합산금액 차이가 ‘부당하다’고까지 할 수 없는 것이, 어쨌든 최저가일 경우 30점부터, 2순위면 24점, 3순위면 18점 등 점수로 주기 때문이다. 금액합산 상 사소한 오류라서 행정청조차 ‘엄중경고’에 그친 사안을 ‘마치 큰 부정이 개입된것처럼 호도하면 안된다’는 것이 입대의와 관리사무소 측 설명이다.

본지는 동의서 배포 측에 취재차 연락했으나 포털카페 관계자는 “개인정보인 연락처를 누구에게서 알아냈느냐?”며 “나는 카페와는 관계없는 사람이니 연락하지 말라”고 전화를 끊었다. 동대표면서도 배포 측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M씨 역시 “관리사무소 누가 연락처를 주더냐?”고 불같이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고발자, 취재진에 화내며 전화 끊어

부당한 상황에 접한 제보자 또는 내부 고발자는 보통 취재진에게 자신의 사연을 세세하게 들려주며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게 마련이지만 이들은 전혀 그러지 않아 본 기자를 의아스럽게 했다. 어쩌면 관리사무소와 입대의가 말하듯 자기들의 주장이 얼마나 명분이 없는지 스스로 깨달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주장이 명분을 얻으려면 정당한 절차를 지켜야 하고, 이를 관철하려면 다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지 약자라는 것이 명분이 되지는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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