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하면 맨해튼 섬의 마천루(摩天樓)가 떠오른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스카이스크래퍼들의 숲이다. 홍콩하면 키다리 상업빌딩 숲과 고층 아파트 군이 붐비는 국제항구와 어우러진 모습이 연상된다. 영국의 런던하면 빅벤이나 타워브리지, 탬즈강변 국회의사당 그리고 런던아이가 만들어내는 중세와 현대의 절묘한 조화가 떠오른다. 프랑스 파리하면 더 넓은 평지도심에 강렬한 악센트를 심어주는 에펠탑을 머리에 그리게 된다.

멀리서 바라본 대도시를 평면에 옮겼을 때 하늘과 맞닿은 가장자리를 따라서 그은 가상의 선을 스카이라인(skyline)이라고 부르고, 이 스카이라인이 얼마나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지 또는 얼마나 자연과 어우러지는 지를 도시미관의 척도로 삼기도 한다.

예향 통영만의 스카이라인은 무엇?
물론 이 스카이라인이 천편일률적일 수는 없다. 도시마다 규모도 다르고, 지리적 환경도 다르고, 그 도시가 속한 인종 및 문화권도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통영에서 뉴욕의 마천루를 기대하기 힘들고, 태국 방콕의 사원을 런던에서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통영이 꿈꾸는 스카이라인은 무엇이며,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그냥 한 잔 술 기울이며 안주삼아 “그 따위 건물을 허가 내줘서 통영의 풍경을 다 망쳤다”고 넋두리 하기는 쉽다.

도시풍경, 동시대인의 모습 투영
하지만 그런 류의 불만들이 모두 다 옳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은 심미안(審美眼)이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눈에는 거슬려도, 다른 사람 눈에는 쏙 박힐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여러 사람의 이권과 결합된 사안이라면 심미안 외에 다른 부분까지 작용하게 마련인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스카이라인이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현재의 우리를 투영한다. 우리가 만든 제도와 규제의 범위에서 그려지고,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신념의 방향으로 높낮이가 정해진다.

도시경관 개념 없던 시절의 유산들
동피랑 앞의 N호텔은 동피랑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일 수 있다. 강구안과 통영항의 아름다움을 반감시키는 그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건물이 지어질 당시 우리 국가단위 공동체 또는 도시 단위 공동체의 합의에 따라 지어졌을 뿐이고, 안타깝게도 당시엔 지금 같은 도시미학 개념이 부족했을 뿐이다.

도천동 해안도로변 고층아파트도 마찬가지다. 도시경관을 지켜야한다는 개념이 부족했던 당시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바닷가에 높은 아파트를 지어서 멋진 풍경을 독점시켜도 되나?”하는 질문은 있었다고 한다. 다만 수산업 외 관광업은 멀기만 했던 당시 “지금 아니면 도시발전은 뒤처지는 것 아닐까?”하는 우려가 더 우세했을 뿐. 언젠가 이곳이 재개발 또는 재건축된다면 우리 도시공동체는 이런 질문들을 다시 받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통영경관, 아직도 현재진행형
북신동이 재개발된 것이 얼마 전이다. 현재 재개발 H아파트는 28층이 최고층인데, 애초에는 32층으로 신청했다고 한다. 세병관이라는 국가문화재가 있어서 4개 층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과 대답에 따라 지금도 도시경관은 가꿔지고 있고, 스카이라인도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통영이 꿈꾸는 스카이라인은 무엇일까? 압도적인 스케일의 고층건물은 아닐 것이다. 기껏해야 3층의 나지막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시대에 뒤떨어지고 불편한 도시도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충분히 지켜주면서도 눈에 거슬리지 않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통영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전통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꿈꾸는 스카이라인은 과거완료형도 미래형도 아닌 현재진행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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