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 sb조선소가 문을 연 것이 1946년이니까 73년전이다. 극동의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이 혼돈의 정국에 빠져있을 때 목선을 만들기 시작한 이 향토기업은 이후 한국전쟁을 겪었고, 5·16 군사쿠데타를 겪었으며, IMF외환위기도 거쳤다.


부활하는 통영역사의 목격자
신아sb조선소는 효봉스님의 미래사 창건(1954년)을 지켜봤고, 1970년대 엔젤호 취항과 비극적인 해군수송함 침몰사고(1974년)도 목격했다. 국풍81로 충무김밥이 전국유명세를 떨친 것도, 케이블카가 개통(2008년)되는 것도 모두 목격했다. 그 사이 신아sb조선소도 성장을 거듭했다. 2000년대 총 수주잔량으로 세계 16위 조선소로 성장했으나, 2008년 외환위기로 급전직하 2015년에는 마침내 파산하고 말았다. 2002년 스웨덴 말뫼 시민들이 흘렸던 눈물을 채 20년도 지나기 전에 우리가 흘릴 줄을 누가 알았으랴.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나타나고, 음지가 지나면 양지가 다가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절망의 나락에 빠졌던 과거를 털고 이제 통영은 말뫼의 희망을 찾으려 나아간다. 망치소리 쩡쩡하던, 근로자들의 구리빛 피부와 흘리던, 땀방울로 가득했던 신아sb조선소를 되살리려 한다.


힘찬 망치소리 창업의 환호성
그것은 힘찬 망치소리가 아니어도 지역민들에게 내미는 구원의 손길이다. 희망의 미래를 꿈꾸게 하지만 입에는 결코 달콤하지 않은 보약이다. 신아sb도시재생 사업의 사업비가 정확히 얼마인지에, 과연 민간투자가 있을 것인지에, 어느 지역까지가 사업범위인지에,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지에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혹자는 1조1000억 원이라고 하고, 또 어떤 혹자는 1조7000억 원이라 한다. 부처연계사업이 포함되느냐마느냐에도 그저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희망을 가지라고 해도 정작 당사자가 그 희망을 거두어버리면 백약이 무효다. 역경을 견뎌야 할 당사자가 주저앉아버리면, 어느 다른 누군가도 그 역경을 대신 버텨주지 않을 것이다. 철부지처럼 울고 앉아서 이것저것 마음 내키는 대로 다 해 달란다고 해 줄 이도 없을 것이지만,  그런 소극적인 마음가짐으로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 밖에 안 된다.

 

시민들의 적극참여가 성공의 키
말뫼시민들 역시 새로운 말뫼로의 개조가 100% 성공할 것으로 확신하며 눈물을 거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걱정도 많았을 것이고, 의심도 품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확신하는 일이란 없다. 절반의 가능성이 사업의 진행과 더불어 점차 성공 쪽으로 기울어졌을 것이고, 희망이 절망을 점진적으로 몰아냈을 것이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산고의 진통이었을 것이고, 마침내 출산의 성과를 누리게 됐을 것이다.

신아sb도시재생사업은 관광형도 아니고, 문화형도 아닌 경제기반형 사업이다.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생성할수 있는 토대를 만드느냐, 얼마나 많은 업체들이 창업을 하느냐, 그것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하느냐가 주목표인 셈이다. 관광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느니, 이런 시설로 관광객을 끌어 모으겠느냐는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신아sb성공신화 탄생 원년
창업공간을 만들고, 창업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판매장을 지원해주고, 주민과 창업 및 취업자들이 머물 공간을 제공해 주고, 방문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구축해 주는 것이 사업의 주목표다. 그리고 그 성공여부는 주민들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느긋하게 기다려 주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참여자와 방문자들을 이웃으로 따뜻하게 맞이하고 격려해 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 2019년, 신아sb도시재생사업이 본격화되는 돼지의 해 올해는 어쩌면 통영성공 신화의 탄생원년인지도 모른다. 그 성공은 지역의 몰락에 울었던 시민 덕분이고, 오랫동안 인내했던 주민에 주는 훈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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