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고개 지키는 벅수 한쌍, 신혼살림기

통제영을 창건한 사적을 기록한 ‘두룡포기사비’는 통제영이 생기기 전의 통영 두룡포를 “한낱 소금기가 많아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바닷가 항구로 여우와 토끼가 뛰놀던 우거진 언덕”이라고 적고 있다.
이 시절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던 사람들은 원문 아래의 해안에서 나룻배로 북신만을 건너 명정동 고갯길을 통해 옛 두룡포로 왕래했었다.
언덕 중간쯤에 이르면 산꼭대기로 가는 길과 두룡포 마을 가는 길이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갈림길에 의좋은 벅수 한 쌍이 서 있었다.
언제 누가 세운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벅수들은 수백년 세월 동안 산 아래 골짜기 마을 백성들을 지켜보았다.
순박한 백성들은 든든한 벅수를 지나치면서 작은 소망들을 담아 커다란 돌탑을 쌓았다.
통제영이 설치된 한참 뒤에 원문 안에 길이 생겼다.
백성들이 나룻배를 타지 않고 육로로 통영성을 드나들게 된 다음에도 명정고개의 이 벅수들은 소박한 백성들의 발걸음을 지켜보았다.
통제영 300년,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6.25와 근대화의 거센 물결이 지났다.
그리고 1970년, 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돌탑과 장승 1기가 매몰됐다.
“잘살아 보세”를 외치던 그때, 우리는 왜 전통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을까? 자동차가 다니는 편리한 길을 만들기는 했지만, 수백년 동안 마을과 함께 해온 벅수는 통행에 방해되는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1993년, 뒤늦게 벅수 1기를 발굴했지만 이미 머리 부분이 손상돼 세워놓기에 무참했다.
이에 통영시는 같은 모양의 돌장승을 세우고 울타리로 묶어 보호했다. 좁은 울타리 안에 묶인 벅수 한 쌍은 수백년 나이 차를 잘 극복하고 있을까?
새 벅수도 그 자리에 선 지 25년, 사람 같으면 은혼식을 할 세월이지만 먼저 선 벅수의 수백 년 세월에 대면 겨우 하루치 삶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 두 벅수는 새각시가 알지 못하는 수백 년 역사를 속살거리고 있을지.

명정동에서 만난 사람들

노년의 품격 "이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명정동 적십자병원 앞 작은 표구사 2층, 오후 1시가 되면 점잖은 노인 넷이 모인다.
김성권(82), 류점형(78), 조창호(78), 이부원(76) 어르신은 벌써 3년째, 이 사무실에 모여 글씨를 쓴다. 때로는 논어, 소학의 글이기도 하고 때로는 명언이기도 한 글씨들을 정성껏 써내려가는 것이다.
시기에 따라 경상남도 서예대전이나 한산대첩 서예대전에 출품할 작품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딱히 무엇을 하겠다는 마음 없이 좋은 글을 쓴다.
노년에, 이보다 더 좋은 취미가 없다.
먹을 갈며 마음을 가다듬고, 좋을 글을 필사하며 삶을 돌아보니 노년의 삶이 풍요롭다. 도를 닦듯이 글씨에 전념하다 보면, 서예대전의 입선, 특선은 삶의 덤처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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