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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동 이야기 3] 명정동의 서피랑

기사승인 2018.11.26  18: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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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피랑의 부활
“자살하고 싶은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 1위, 명정동”
경남도 내 건강지수를 측정한 지표조사 결과, 명정동의 위기는 심각했다.
소득, 건강, 술 등 각종 건강지표를 나타내는 설문조사결과 명정동이 술소비 1등, 기대수명 꼴찌라는 성적을 보였던 것. 특히 더 걱정스러운 건 자살 위험율이 타지역보다 5배나 높다는 점이었다.
이런 이유로 명정동은 건강취약지역 주민 건강 증진을 위한‘건강플러스 행복플러스 사업’ 대상자가 되어, 통영시에서 가장 먼저 ‘건강위원회’가 설치됐다. 2012년의 일이다.
표준화 사망률이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한 주민주도형 프로그램이니만큼 명정동의 위기가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보여준다.
김용우 환경과장은 2013년 명정동장으로 발령받아, 5년 7개월 동안 명정동 살림을 살았다.
김용우 동장은 가장 먼저 철학 교수를 찾아갔다.
“사람들은 왜 자살하려고 할까요?어떻게 하면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없앨 수 있을까요?”
명정동장으로서 이 질문은 절박한 것이었다.
“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죽지 않습니다.”
김용우 동장은 이 해답을 들고 건강위원회를 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이웃’이 있음을 알려줄까?” 하는 것이 화두였다.

명정동 주민들과 가장 많이 소통하는 사람 중 하나인 충무감리교회 김래성 목사가 “이 거리를 인사하는 거리로 만듭시다.”하고 제안했다.
적십자병원부터 99계단 입구까지의 200m 구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서로 인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명정동의 종교, 민간단체들이 힘을 합쳐 아침마다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거리를 홍보했다.
평림동의 800평 땅을 개간해 농사짓기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도 이웃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소일하는 이웃들을 불러모아 “운동 삼아 농사 짓자.”며 평림동 밭으로 이끌어냈다.
고추며 호박이며 배추며, 열리는 대로 “다 따 가져가세요.
” 했지만 순박한 어르신들은 “동에서 수고한 거 우째 먹습니까?” 하며 가져가지 못했다.
결국 새마을 부녀회의 손을 빌려 일부는 경로당 어르신들을 위한 김장을 하고 일부는 시장에 내다팔아 기금을 만들어 다시 주민들에게 돌려주었다.
이런 선순환이 이루어지자, 마을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자랑스러운 유산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마을 살리기 사업을 하면서, 잊고 있던 이름 ‘서피랑’을 전면에 내세웠다.
뚝지먼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서피랑은 옛날 서포루가 있던 언덕으로, 동포루의 동피랑과 쌍벽을 이루는 통영 성지의 한 면이었다.

새롭게 거듭나는 서피랑

박경리, 백석, 윤이상, 이중섭... 예술로 거듭나는 서피랑
박경리 선생이 태어난 곳은 간창골 쪽의 문화동이다. 하지만 박경리 선생이 자란 곳은 골목 몇 개를 돌아나온 명정동이다.
박경리 선생 앞집은 우리나라 4대 대통령이었던 윤보선 대통령의 영부인 공덕귀 여사가 나고 자란 집이다.
박경리 선생이 국내 최고의 소설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은 통영을 배경으로 한 ‘김약국의 딸들’이다.
1962년 첫 발간된 뒤에 몇 차례나 드라마로 리메이크되기도 한 이 소설은 ‘토지’와 같은 시대인 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사회적 격변기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상상 속 배경을 중심으로 한 ‘토지’와 달리 서문고개, 정당새미, 뚝지먼당 등 명정동 골목길을 그린 듯이 드러내고 그 속에 주인공들을 풀어놓았다.
소설 속 악역 하동댁이 살던 기와집도 그대로 있다.
윤이상은 명정동이 전략적으로 부각시킨 이름이다.
사실 도천동 바닷가의 윤이상과 세병관에 있었던 통영보통학교는 각각 다른 마을에 속한 이야깃거리다.
그러나 도천동의 윤이상이 세병관의 학교에 가려면 반드시 명정동을 거쳐야 한다는 데서 착안, 서피랑 마을 만들기의 일환으로 ‘윤이상 학교 가는 길’을 만든 것이다.
당시의 학생들이 다닐 수밖에 없었던 길을 이어, 서피랑에 음악계단과 음악공원을 만들었다.
이중섭과의 연결도 서피랑의 새로운 발견에 속한다.
원래 서피랑은 통영항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이었다. 사진작가들도 강구안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서피랑에 오르는 일이 잦았다.
통영의 자연을 사랑한 이중섭이 항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위치를 몰랐을 리 없다.
이중섭의 그림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은 당시 화가가 서 있던 위치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명정동은 여기에 확실한 조형물을 만들어, 이중섭의 그림을 중첩해 볼 수 있도록 해놨다.
조용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라고 개작해 불러 국민가요가 된 이 곡은 원래 가수 김성술이 부른 ‘돌아와요 충무항에’였다.
지난 9월 이 노래비를 서피랑 언덕에 세운 이유는 이곳이 충무항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뷰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이제 서피랑의 신화가 시작되었다.
막다른 듯 이어지는 서피랑 좁은 골목골목에 잠자던 통영의 예술과 문화가 오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고 있다.

이중섭이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을그렸을 것으로 여겨지는 뷰 포인트에 그림을
대 볼 수 있는 조형물을 설치했다.

 

김선정 기자 64440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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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한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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